
코스맥스는 복합 용기를 단일 소재로 바꾸고, 한국콜마 계열 연우는 금속 스프링을 뺀 펌프와 리필형 에어리스 용기를 개발했다. 유럽연합의 새 포장 규정이 적용되면서 K-뷰티의 수출 경쟁이 내용물 밖, 용기 구조와 증빙으로 넓어졌다.
유럽연합(EU)의 포장 및 포장폐기물 규정(PPWR)이 2026년 8월 12일부터 순차 적용됐다. EU 27개 회원국에서 동일하게 적용되는 이 규정은 포장재의 유해물질, 재활용 가능성, 최소화, 재생원료 사용 등을 단계별로 다룬다. 당장 모든 세부 기준이 한꺼번에 시행되는 것은 아니다. 재활용 설계 등급과 플라스틱 재생원료 의무는 2030년부터 적용될 예정이다. 다만 EU에 포장된 제품을 내놓는 기업은 지금부터 용기와 부품별 재질을 확인하고, 적용 요건을 입증할 자료를 준비해야 한다.
화장품 용기는 특히 까다롭다. 병 하나에도 펌프의 금속 스프링, 여러 종류의 플라스틱, 실링재, 라벨과 코팅이 섞인다. 보기에는 한 제품이지만 재활용 단계에서는 분리하기 어려운 복합 구조가 된다. 지난 8월 26일 헤럴드경제 보도에 따르면 화장품 포장은 병 본체뿐 아니라 뚜껑, 펌프, 밀봉재, 라벨, 외부 상자까지 구성요소별 확인 대상이 될 수 있다. 작은 브랜드일수록 디자인보다 공급업체의 재질 정보와 기술 문서를 먼저 챙겨야 하는 이유다.
화장품 연구·개발·생산 기업 코스맥스는 아크릴이나 금속이 섞인 용기를 폴리프로필렌(PP)·페트(PET) 같은 단일 소재 플라스틱으로 바꾸는 기술을 확대하고 있다. 기존 철제 스프링을 플라스틱 부품으로 대체한 메탈 프리 펌프도 그중 하나다. 기계적·화학적 재활용 플라스틱을 적용한 용기 연구도 병행한다. 다만 재생 플라스틱은 일반 플라스틱보다 원가가 높고, 검은 점이나 미세한 색 차이가 생길 수 있어 화장품이 요구하는 색상과 마감을 구현하는 데 추가 시간이 든다.
국내 화장품 포장 전문기업 연우는 부품 수와 소재 종류를 줄이는 방향으로 용기 자체를 다시 설계했다. 금속 스프링을 없앤 펌프, 플라스틱 중심 펌프, 내용물을 공기와 덜 접촉시키는 리필형 에어리스 용기를 개발했다. 2026년 3월에는 100% 폴리프로필렌으로 만든 립 제품 용기 ‘클린 스틱’을 공개했다. 7월에는 국내외 화장품 브랜드와 제조·포장사 관계자 약 200명을 모아 EU 포장 규제 대응 세미나를 열었다. 규제 대응이 개별 브랜드의 문제가 아니라 제조사와 용기업체가 함께 풀어야 할 공급망 과제가 됐다는 장면이다.
LG생활건강도 LG화학과 함께 여러 소재가 겹쳐 재활용이 어려웠던 대용량 파우치를 단일 소재로 바꾸고 내구성을 보완했다. 이 사례들은 친환경 문구를 전면에 내세우는 캠페인보다 용기의 부품 수, 재질 조합, 리필 가능성, 공급업체 증빙을 먼저 손보는 쪽으로 업계의 무게가 이동했음을 드러낸다.
앞으로 유럽에서 K-뷰티 브랜드를 가르는 기준에는 제품력과 마케팅뿐 아니라 ‘포장을 얼마나 단순하게 설계하고 그 재질을 얼마나 정확히 설명할 수 있는가’가 포함된다. 중소 브랜드라면 출시 막판에 용기를 교체하기보다 기획 단계에서 제조·용기업체와 부품 명세, 재활용성, 재생원료 적용 가능성을 함께 검토해야 한다. 예쁜 용기가 브랜드를 알렸다면, 이제는 분리되고 입증되는 용기가 수출을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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